2023.8.20.
창세기4:10-5:32
오늘 본문에서는 가인이 세운 도시와 셋의 후손이 세운 예배공동체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이 차이를 살펴보고 우리의 삶과 예배를 돌아보도록 하자.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받은 저주는 이 땅 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 다니게 되는 저주였다 (창4:12). 그리고, 이에 대해 가인은 극도의 불안감을 안고 에덴의 동쪽 놋 땅에서 살았다 (놋은 쉬지 않고 떠돌아 다닌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가인은 자신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도시를 세우게 된다 (창4:14-17). 즉, 도시의 기원은 인류의 불안을 달래기 위함에 있다. 이후 가인의 후손들은 목축, 음악, 대장장이 기술을 발전시키며 도시에서 살아가게 된다.
반면에, 아벨이 죽은 후에 낳은 셋째 아들인 셋과 그의 자손들은 주님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기 시작하였다. 창세기 5장에는 아담에서 셋을 통해 노아로 이어지는 계보가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가인의 후손과 같이 세상적인 업적을 이룬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아담의 7대손인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들림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셋의 후손은 이렇게 자손들에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예배를 가르쳤을 뿐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인간에게는 근원적인 불안이 있다. 이를 달래기 위해 쉬지 않고 떠돌며, 도시에 모여 살고, 문명을 발전시키며, 전문기술을 익히고, 나에게 잘못한 사람에게 77배의 보복을 하더라도 그 불안은 달래지지 않는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 우리가 안식을 얻고자 했던 세상적인 선택들을 통해 진정한 안식을 얻은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불안에 대비되는 근원적인 기쁨(Joy)은 감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가치있는 것과 연결될 때만 얻을 수 있는 것임을 생각하자. 우리의 삶이 예배로 드려질 때 비로소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들 또한 가치 있어지고,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더 가지려 쉬지 못하는 가인의 도시와는 달리 오히려 더 가지려 하지 않고 나누고, 높아지기 보다 종으로 섬기고, 내게 잘못한 사람을 70번씩 7번을 용서하더라도 오히려 더한 기쁨이 주어진다. 그것이 예배자의 특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