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 1-3
이 편지는, 발신자가 바울과 소스데네임을 밝힘으로써 시작된다(1절). 바울의 교회관(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공동체)을 드러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소스데네는 고린도에서 있었던 소동의 리더(유대회당장)였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2절에서 바울은 “교회”를 여러 표현으로 정의한다.
1) 하나님의 교회
‘의’는 소유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조사이다. 즉, 하나님이 대가(예수님의 피값)를 치르고 소유하셨다는 말이다(행20:28). 물론 처음부터 하나님의 소유였지만, ‘선악과’ 사건으로 사탄에게 빼앗겼다가 다시 되찾은 것이다.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잊지 말자.
2) 예수 안에서
교회는 예수 안에 있어야 한다. 교회가 “예수”를 빼고 거론되는 것들로 가득차 있다면, 그 모임은 이미 교회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교회와 예수의 관계성을 잊지 말자.
3) 거룩해지고
교회는, 거룩함이 이미 완료된(헬라어로 완료분사형) 상태이지만, 동시에 계속해서 거룩해져야 한다(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_레11:44). 거룩함은 영적훈련을 통해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니 영적훈련(양육 과정)을 소홀히 하지 말자.
4)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가 하나님께 소속되어 있을 때에,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한 백성으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벧전 2:9), 불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특별히 사랑하시는 대상으로 부르셨다(롬 1:7). 그러니 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후원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자.
5) 각처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들
교회는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의 모임이다. 따라서 교회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6) 예수 그리스도는 이 사람들의 주님이시며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교회는 하나이다. 편가르기를 하거나 내 교회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이들이 교회임을 명심하자.
이처럼, 2절의 정체성을 가지고 교회로서 기능하고 있을 때에 3절(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충만하기를)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아무나 주님의 은혜와 평화를 누릴 수는 없다.
이 시간 이후부터는, 고린도전서 1절에서 3절의 말씀이,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해답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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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가기 싫은 77가지 이유]처럼, 교회 가기 싫었던 적이 있었는가? 그 이유가 무엇이었나?
우리 교회에 어떤 부분을 개혁(또는 도입)하고 싶은가?
부부싸움을 하고, 화해하지 못한상황에서 교회가기 싫었던 적이 있었던것 같다.
교회 가기 전에 몸과 마음이 힘들면 가고 싶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 교회가 편하다는 느낌보다는 긴장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교회의 문제라기보다는 제 자신의 문제라는 느낌이 더 크네요.
교회 다녀와서 몸과 마음이 피곤하면 가고싶지 않은 것 같다 아이를 보면서 교제하기가 쉽지 않아서 환경이 바뀌었으면 하나 쉽지 않을 것 같다
'옳은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 을 가지면 좋겠다 생각했었어요
교회가기싫었던적은 없는것 같다. 사람들때문에 불편했던적은 있다.
教会に行きたくなくなったことがある理由:人間関係
호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