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브레이너드(1718-1747)
북아메리카 인디언 선교의 개척자
21세에 개종, 24세에 헌신, 29세로 생애를 마침.
미국 코네티컷의 헤덤에서 기독교 가정의 9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9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4살이 되던 해애 어머니도 돌아가시게 된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자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의 충족성에 대해 칼빈주의적 교리를 의심없이 받아들였다. 그의 고민은 부흥 운동가들의 강조로 그가 개인적 구원체험을 얻으려고 할 때 시작되었다. 그의 삶을 생각해볼때 그는 저주받은 사람들 중에 자기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구원받기위해서는 단지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복음주의적 설교가 그에게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1년 이상을 기도와 금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어느 주일 날 저녁 어두운 숲을 걸어가면서 그는 그의 영혼에 말할수 없는 영광의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환상이나 어떤 현상도 아닌, 그 전에는 품지 못했던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내적이해, 혹은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그는 하나님만을 높이고 우주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하여 자신을 생활을 복종시켰다.
1718년-1731년
어릴적부터 다소 침착한 성격이었으며 우울한 기분에 빠지는 경향이 있었다.
13살이 지날 때까지는 별 염려없이 "하나님 없이 세상에서" 지낸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1732년 겨울 (당시 14살) 육신적인 안일함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당시 헤덤에 나돌던 치명적인 전염병 때문에 크게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자주 끈질기게, 다소 열정적으로 기도에 힘썼고,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고, 특히 제인웨이 목사의 책을 읽고 기쁨을 얻었다. 때로는 신앙의 임무들을 행하는 데에서 큰 기쁨을 얻었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회심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혹은 내가 천국과 행복으로 가는 길에 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라기도 했다.
1732년 3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부터 무척이나 괴로웠고 우울에 빠졌다.
1733년 집을 떠나 이스트헤덤으로 향한다. "하나님 없이 세상에서" 살면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지만 선한양심으로 돌아온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깨닫게 된다.
1738년, 20살이 되었을때, 스스로 공부를 시작했고 신앙의 임무들에 더욱 열심히 정진하게 되었다.
헤덤교회의 목사님에게 가서 함께 생활하며 신앙적인 임무들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다.
-몇몇 청년들과 함께 신앙활동을 위하여 주일 저녁마다 모임을 가짐
-모임이 끝나면 그 날 들은 말씀들을 홀로 되씹고 기억할수 있는 만큼 기억해 내느라 때때로 밤늦도록 애씀
-주일에 들은 설교 말씀들을 다시 기억하고 묵상함
이런 행동들을 통하여, 이렇게 행하는 여러 신앙적인 임무들에 그저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던것임을 깨닫게 됨.
1738년 초겨울의 어느 주일.
은밀한 임무들을 행하러 바깥으로 걸어가는 중에 불현듯 나의 위험한 상태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한 생각이 밀려와 나를 압도하였고, 나는 깜짝 놀라 멍하니 서있었다.
나의 죄와 사악함이 시야에 들어와 하루 종일 큰 괴로움에 휩싸였다.
1739년 2월
은밀한 금식과 기도를 위하여 하루를 정하였고,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기를 위하여 종일토록 거의 쉬지않고 부르짖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날 나의 마음의 상태에 대해 상당한 발견을 허락해 주셨다.
1742년 4월-7월
신학 공부 시작~설교자격취득
1742년 7월-11월
강도사 인허~선교사임직
1742년 11월-1743년 3월
선교사 임직~뉴욕의 카우나우믹에서의 인디언 선교사역 개시
11월26일
나의 지극한 추함을 여전히 지각하였고, 할 수 있는 만큼 홀로 있으려고 애쓴다.
11월27일
하나님께 내 영혼을 의탁하며 어느 정도 위로를 얻었다.
뉴욕을 출발하였는데 여전히 말할 수 없는 나의 무가치함을 느끼며 괴로움에 싸여 있었다.
계속해서 내 마음을 하나님께로 올려 긍휼하심과 순결하게 하시는 은혜를 구하였다.
12월12일 주일
아침에, 마치 기도나 설교를 할 힘이 거의 혹은 전혀 없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박하게 필요한 것을 느꼈다.
1743년 4월-1744년 6월
카우나우믹의 인디어 사역~일시적인 퇴거와 고난~학교를 세움~예일 대학 교수회에 제출한 고백~금식기간~델라웨어의 폭스에서의 인디안 사역의 개시~목사 안수
1744년 6월-1745년 6월
델라웨어의 폭스 인근에서의 인디언들을 위한 사역~학교를 세움~서스퀴한나의 인디언들을 방문함~뉴저지의 크로스윅성에로의 여정
1745년 6월-11월
크로스윅성 사역을 시작~델라웨어 폭스에서 사역을 재개~통역자의 회심
1745년 11월-1746년 6월
여러지역에서 일어난 인디어들의 회심
1746년 6월-1747년 10월
건강의 악화로 어쩔 수 없이 인디언들을 떠남~그의 동생 존이 그를 이어서 선교사가 됨~코네티컷에 도착하여 친지들과 함께 지냄~보스턴으로 향함 (거의 죽음에 가까운 상태에 이름)~보스턴에서 쓰임받음~노샘프턴으로 돌아옴~마지막 질병에서 은혜로 승리함~그의 죽음
브레이너드의 신앙이 남달랐던것은 구원을 얻었다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자들과 달리, 구원을 얻게 한 그 마음의 역사는 신앙적 삶의 시작이요, 이제 처음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큰 일을 시작한 것이요, 이제 경주를 처음 출발한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신앙은 격렬한 감정에 의해서 발동된것이아닌, 거룩한 정서와 하늘에 속한 기질이 그 자신 속에서 활기 있게 역사하고 있고 또한 두려움을 몰아내는 신적인 사랑이 내적으로 왕성하게 발휘되고 있다는 느낌에 의한 것이었던 것이다.
또한 브레이너드의 신앙은 이기적이지도 않았고 축복을 바라고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나님을 향한 그의 사랑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본성의 지고한 탁월하심에 근거하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그의 신앙은 체험만 있고 실천은 없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모든 내적인 조명과 감동과 위로들은 곧바로 실천으로 이어지는 성향을 보였다.
느낀점:
지금까지 읽고 들었던 위인들과는 전혀 다른 배경과 특징을 가진 인물이었다. 일기에 쓰여져있는 표현들을 보면 그가 얼마만큼 민감하게 하나님앞으로 나아오려고 했는지 충분히 느낄수 있고, 시편에 기록된 다윗의 시처럼 때로는 기쁨과 감격에 찬 구절, 때로는 절박한 상황속에서의 울부짖음을 볼 수 있다.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과의 교제에 민감하게 반응했으며, 하루 사이에도 몇번이고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들을 세세하게 표현하며, 스스로가 얼마나 나약한 자인지를 항상 고백한다. 그러한 하나님과의 교제속에서 깨닫는것이 있으면 바로 반응하고 실천하였고, 끊임없이 회개하는 고백을 보게 된다. 지금의 나는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과 얼만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는지, 그분의 동행하심과 역사하심을 얼만큼 체험하고 있는지, 그저 부끄러운 모습뿐이다.. 구원을 받은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것이 삶의 목적임을 잊지않으며, 그 목적을 위해 매일 하루의 삶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깨닫고, 영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Think Point!!
-하루를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나요? (일기 작성, 묵상, 등)
-매일 삶속에서 하나님과 소통하는 시간은 어느정도 되나요?
-하나님과 교제속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민감하게 반응하는 방법은 어떤것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