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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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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읽기"의 파워


대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교회 선배들과 함께 캠퍼스 전도를 나갔다. 각자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다시 처음의 장소로 돌아왔다. 한동안 나는 정말 두려웠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벤치에 앉아 있다가 돌아오곤 했었다. 매월 정기적으로 전도를 나가다 보니 조금씩 용기가 생겼고, 낯선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며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영접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은 “언제든지 교회로 오세요.”였다.


그러다가 대학교 4학년 때, 친한 친구(넌크리스천)와 함께 같이 살게 되었다. 방이 두 개 있는 집을 빌려서 함께 사용했는데, 그 친구의 제안은 단호했다. 함께 사는 집이기 때문에, 이 집에서는 어떠한 종교적 행사도 하면 안 되고, 찬송을 크게 틀어도 안 되고, 교회 사람들을 데려와서 기도모임을 가져도 안 되고, 자기에게 종교적 강요도 일절 금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동의했다. 그리고 나도 한 가지를 제안했다. 나와의 약속은 단 한 달만 유효하다고 하면서, 매일 저녁 한 권의 책(요한복음)을 읽자고 했다. 기도도, 찬송도, 주장도, 설명도 하지 않겠고, 다만 하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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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성경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오해


자유주의(Liberalism)자들은 성경을 “사람들이 쓴 책”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을 믿지 않으며, 예수님도 인류의 4대 성인 가운데 한 사람 정도로 생각한다. 이러한 주장이 퍼지면서, 신학적인 관점이 아닌 일반 성도들 사이에서도 자유주의 관점으로 성경을 이해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이러한 관점은 넌크리스천의 견해과 다를 바가 없다.


신정통주의(Neo-Orthodoxy)자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 포함된 책”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성경 안에 하나님의 말씀도 있고 사람의 주장도 있다는 것이다. 신앙적인 내용 이외의 기록들(역사, 과학)은 인간의 기억과 관점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오류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성경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절대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 역시 일반 성도들 사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잘못된 주장이다.


특히 성경에 대한 가장 흔한 오류는, 성경의 원본만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사본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서 약간씩 빗나가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원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성경들은 어쩔 수 없이 오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은 성경의 절대권위를 믿지 않게 만들었다.

반면에, 원본이 없고 사본만 존재하니까 모든 성경(정경으로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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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이 종말론에 대해 가져야 할 적절한 태도는?


종말론은 우리에게 두려운 단어가 된 지 오래 되었다. 시한부 종말론의 여파가 너무나 컸고,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등장하는 이단들의 종말론 주장은 신앙인들로 하여금 종말론을 거론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또한 종말에 대해 다루고 있는 요한계시록도 우리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책이고, 종말과 대환란과 휴거의 위협은 연약한 성도들을 한없이 주눅들게 했다.


오늘날 한국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잘못된 종말론에 대해서, 정성욱 교수(덴버신학교 조직신학)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직전 교회가 인내로 통과해야할 대환난이 있음을 거부하고, 환난 이전에 갑자기 하늘로 들어 올려지게 될 것이라는 휴거설.

둘째, 베리칩이 요한계시록 13장이 말하는 짐승의 수 혹은 짐승의 표인 666이라는 주장.

셋째, 백투예루살렘 운동(교회의 역사 동안 복음이 서진해 왔기에 마지막으로 복음이 전해져야 할 나라가 현존하고 있는 이스라엘 국가라고 보고, 이스라엘을 복음화 하는 것이 예수님의 재림을 앞당기는 것이기에 교회가 이스라엘 국가를 정치적으로 지원하고 도와야한다는 운동).


나는, 종말론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어떻든지 그것이 과연 얼마나 중요한 문제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대환란이 있거나 없거나, 휴거가 있거나 없거나, 베리칩을 받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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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이 성령에 대해 가져야 할 적절한 태도는?


성령론이 관심 주제로 떠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은 상황이라 연구 자료나 저술이 빈약한 편이다. 신학계가 이러한 형편이다 보니 일반 성도들에게 전달되는 내용은 더더욱 빈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평범한 신앙인들은 미신적인 상상(성령을 착한 귀신쯤으로 여긴다거나 무당처럼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중간 매개자로 생각하는 등)으로만 성령을 이해하려 했다.


그러다가 1950년 이후, 오순절 운동과 은사주의 운동, 삼위일체론 등이 대두되면서 일반 성도들도 조금씩 성령론에 노출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적어도 미신적인 상상으로부터는 벗어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문화적∙종교적 다원주의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성령론에 대한 이론도 다원화되어서 더욱 복잡해 졌고, 신앙인들은 이 다양한 이론들 속에서 성령에 대한 정의에 혼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성령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성령은 인격이 있는가? 성령의 자리는 어디인가? 성령과 생태계는 무슨 연관이 있는가? 성령의 사역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등등, 기존의 성령론(성령과 그리스도와의 관계, 성령의 신성 등)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영역에서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나는, 성령론이 이 같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이후로 우리가 계속해서 “성령 시대”를 살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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