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1. 24.
사도행전 4:15-22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들은 예수에 대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 교육을 못 받은 목수의 아들로서 무식한 어부들과 동거함
- 동네 강패들인 세리들와 죄인인 병자들과 어울림
- 안식일을 어기면서 백성들을 선동함
-방방곡곡에 사람들을 보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문을 냄
- 끝까지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다가 죽은 이단의 교주
이들이 이런 관점을 고수했던 데에는 시기질투도 한 몫을 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딱딱하게 굳고 두꺼워서 절대로 깨질 수 없는 “관점의 틀”일 것이다. 이들은 예수를 이단의 교주로 확신했고, 이러한 자신들의 관점으로 숨가쁘게 달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했는데 3일만에 예수가 부활한 사건이 벌어졌다.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생겨나기 시작하자, 이들은 굉장히 당황했다.
실은, 바로 지금이 관점을 바꾸기에 딱 적합한 시점이다. 뭔가 내가 기대했던 결과가 아닐 때는 내가 끼고 있는 안경이 색안경인지를 확인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관점을 바꿔볼 의지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서 이번에는, 태어나서 40년이 넘도록 앉은뱅이였던 자가 멀쩡하게 나아서 베드로와 요한 곁에 서있는 것을 본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부인할 수 없는(16절) 사건이었기 때문에 베드로와 요한에게 아무 트집도 잡을 수 없는(14절) 형편이었다.
자, 이쯤 되면, 이제 정말 관점을 좀 바꿔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는 더 고집 피워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들은 놀랍게도, 자신들이 쓰고 있는 색안경을 벗고 싶지 않아서, 오히려 자신들의 관점에 맞춰서 현실을 조작한다. 베드로와 요한을 윽박지르면서 이 소문이 퍼지지 못하게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위협한(18절)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이들을 구제할 길이 없어 보인다. 관점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이들은 끝까지 자신들의 관점을 버리지 않았다. 과연 이들에게 희망은 있을까? 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답은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를 판단해 보라(19절)”는 말뿐이다.
사실 이런 고집은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자신의 관점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볼 때,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만의 색안경을 벗고 “성경의 관점”으로 조정되어가는 것은 인류 역사상 정말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관점의 변화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위대한 일이다. 그러니 성경의 관점으로 조정되는 과정에 기꺼이 참여하고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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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의 변화를 시도했던(시도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려는 노력을 많이 합니다. 일을 할때에도, 누군가와 대화를 할때에도,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때에도 그 사람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한뒤 행동으로 옮기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보니 서운함도 화도 덜하게 되는것같더라구요.. 하지만 반대로 상대에게도 그만큼을 기대할때가 있기에 역효과도 조금 있는것같아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