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6. 06
사도행전 11:1-18
앞에서 보았던 것처럼, 베드로는 여러 날 동안 무두장이의 집에서 묵었었다(9:43). 그리고 고넬료라고 하는 이방인의 집에 가서 설교도 하고 세례도 주었다(10장). 베드로는 그야말로, 유대인으로서는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일들을 일삼고 돌아다닌 셈이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이단성이 의심되는 행동을 해서 물의를 빚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 공동체 지도자들은 베드로가 돌아오기만을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베드로가,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하고 말이다. 베드로도 이 사실을 불 보듯 뻔히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 공동체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놓고 늘 이런 갈등을 하는 것 같다. 동화될 것인가 떠날 것인가?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오늘 베드로가 한 것처럼, 자신이 깨달은 것을 그저 간증하는 것이다. 공동체에 순응하는 척하면서 묵묵히 혼자서만 옳은 길을 가거나, 공동체를 정죄하며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바를 있는 그대로 간증하면서 적극적으로 공동체에서 나누어야 한다. 그럴 때에,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깨닫고 자랄 것이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공동체가 자신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라고 하는 비난에 대해서 “아니, 예수님의 제자들이면서, 당신은 어떻게 그럴 수 있나!”하고 말하지 않았다. 베드로는 적어도 그들보다는 관점의 폭이 넓었던 것 같다.
관점을 넓혀라. 상대방을, 내가 가지고 있는 틀 안에 넣어버리면 답은 없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그럴 수 있나!”로 여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정말 옳다면 나의 얘기를 더 적극적으로 나누자. 비록 즉시 공감받지 못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들을 귀가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듣고 변화된다면, 이것이 “전 인류에게 복 주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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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공동체나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하고 생각하는(생각했던) 것이 있는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대응했는가)?
저는 갈등을 피하는 쪽을 선택했었어요. 떠나는 편인 것 같아요.
사람들의 눈을 더 의식해서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를 먼저 생각해야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은 잘 지킵시다...! 작년 여름수련회 때 진지하게 떠나려고 고민했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저도 이해의 폭을 넓혀가야겠지만서도... 적어도 약속시간이 넘기 전에는 몇 분을 더 기다려야 하는 건지, 왜 늦는지는 듣고싶습니다...!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으로 성경에 대해서만 알려주고 싶다
딱히 없는 것 같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