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6장
바울은, 같은 내용으로 벌써 다섯 번째 변론하고 있기 때문에 지겨울 정도이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아그립바 왕 앞에서 다시 변론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말한다(2절). 이유는, 아그립바 왕은 유대 사람의 풍속과 쟁점들을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3절). 사실, 지금까지 바울을 심문했던 로마 관리들은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바울의 변론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었다. 이에 바울은 기쁜 마음으로 변론을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바울은 이 변론이 곧 "복음"이라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에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에(6절)재판을 받고 있다.
2) 그 약속은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을 살리신다는 것(8절)이다.
3) 그런데 왜 당신들은 이 약속을 믿지 않는가?(8절).
4) 나는 당신들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반대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나도 그를 심하게 반대했었다(9-11절).
5) 그런데, 예수의 이름을 반대하는 일로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그 예수를 만났다(12-18절).
6) 그분은 나에게 “나는 네가 핍밥하는 예수”라고 말씀하시면서, 모든 백성들에게 이를 알리라고 하셨다(15절).
7) 그래서 나는 하늘로부터 받은 환상을 거역하지 않고(19절), 온 땅을 돌아다니면 전하였다(20절).
8) 예언자들과 모세가 장차 그렇게 되리라고 한 것(22절)을 전한 것이 뭐가 잘못인가?
9) 당신도 예언자를 믿으시는 줄 안다(27절).
10) 나는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결박을 당한 것 외에는, 꼭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빈다(29절).
한 주간, 이러한 바울의 변론을 묵상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만일 나에게 부활의 소망이 없어진다면, 지금 나의 일상 생활에서 바뀌는 것은 무엇일까?
일일 스케줄에 어떤 변화가 있고, 재정관리와 인간관계와 건강관리 등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만일 바뀌는 것이 거의 없다면, 그 말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부활을 그만큼 소망하지 않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부활의 소망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만큼 사랑하거나 기뻐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나는 지금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주를 위해 어떤 것을 하고 싶은가? 또 어떤 것을, 주를 위해 절제하고 싶은가?
부활의 소망을 품고 주를 위해 힘써 살아내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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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지금의 나의 일상생활에는 어떤 변화가 생기는가?
앞으로, 나는 주를 위해 어떤 것을 좀 더 하고 싶은가? 또는 어떤 것을 보다 절제하고 싶은가?
항상 삶에 불안해하며, 사람눈치 보며, 사람과 술에 의지하는 삶을 살것 같다. 주님 앞에 나의 죄를 털어 놓는 회개의 시간이 더 많아져야 하겠다
삶의 가치가 바뀌면서 정-말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시간과 물질의 쓰이는 부분의 변화가 정말 많을 것 같다. 나의 시간과 물질을 복음을 전하는데에 더 쓰고싶다-주말에 넌크리스찬들을 만나는 시간을 늘린다.
주님이 없는 나의 삶은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자동차와 같지 않을까? 자유롭게 산다고 착각하지만 죽음의 상태에 있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의 내 삶은 죽음 가운데 있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게으르고 삶의 야루키가 없는 일상을 보낼것같다. 일도 하지않고 결혼도 하지않았을것같다. 주를 위해 더 많은시간을 내어드리고 싶다.
다른 종교를 찾아다니거나 즐거움을 찾아 술을 먹거나? 내 쉬는 시간을 줄이고 더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身勝手な考え・行動を行う (integrityを意識しなくなる) →傲慢な行動・発言 →できることならサボろうとする →不平不満を言う 与えられた環境・時間・スキルを神様のために使えないかもう少し考えてみ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