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은 우리에게 두려운 단어가 된 지 오래 되었다. 시한부 종말론의 여파가 너무나 컸고,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등장하는 이단들의 종말론 주장은 신앙인들로 하여금 종말론을 거론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또한 종말에 대해 다루고 있는 요한계시록도 우리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책이고, 종말과 대환란과 휴거의 위협은 연약한 성도들을 한없이 주눅들게 했다.
오늘날 한국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잘못된 종말론에 대해서, 정성욱 교수(덴버신학교 조직신학)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직전 교회가 인내로 통과해야할 대환난이 있음을 거부하고, 환난 이전에 갑자기 하늘로 들어 올려지게 될 것이라는 휴거설.
둘째, 베리칩이 요한계시록 13장이 말하는 짐승의 수 혹은 짐승의 표인 666이라는 주장.
셋째, 백투예루살렘 운동(교회의 역사 동안 복음이 서진해 왔기에 마지막으로 복음이 전해져야 할 나라가 현존하고 있는 이스라엘 국가라고 보고, 이스라엘을 복음화 하는 것이 예수님의 재림을 앞당기는 것이기에 교회가 이스라엘 국가를 정치적으로 지원하고 도와야한다는 운동).
나는, 종말론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어떻든지 그것이 과연 얼마나 중요한 문제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대환란이 있거나 없거나, 휴거가 있거나 없거나, 베리칩을 받거나 말거나, 예루살렘에 정치적 지원을 하거나 말거나… 우리의 오늘 하루가 “복스러운 소망(딛 2:13)”을 기대하는 사람으로서 살아낸, 주님 보시기에 멋진 날로 기록되면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 종말론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언제 오시나? 어떤 모습으로 오시나? 하는 것이었으나,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이제는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