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교회 선배들과 함께 캠퍼스 전도를 나갔다. 각자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다시 처음의 장소로 돌아왔다. 한동안 나는 정말 두려웠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벤치에 앉아 있다가 돌아오곤 했었다. 매월 정기적으로 전도를 나가다 보니 조금씩 용기가 생겼고, 낯선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며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영접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은 “언제든지 교회로 오세요.”였다.
그러다가 대학교 4학년 때, 친한 친구(넌크리스천)와 함께 같이 살게 되었다. 방이 두 개 있는 집을 빌려서 함께 사용했는데, 그 친구의 제안은 단호했다. 함께 사는 집이기 때문에, 이 집에서는 어떠한 종교적 행사도 하면 안 되고, 찬송을 크게 틀어도 안 되고, 교회 사람들을 데려와서 기도모임을 가져도 안 되고, 자기에게 종교적 강요도 일절 금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동의했다. 그리고 나도 한 가지를 제안했다. 나와의 약속은 단 한 달만 유효하다고 하면서, 매일 저녁 한 권의 책(요한복음)을 읽자고 했다. 기도도, 찬송도, 주장도, 설명도 하지 않겠고, 다만 하루에 한 장씩 소리내어 읽는 것만 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매일 밤 자기 전에 친구와 함께 요한복음을 한 장씩 소리내어 읽었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한 달이 지나갔고 드디어 마지막 장을 읽은 날, 나는 친구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책장을 덮었다. 그런데 친구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가슴을 움켜쥐며 ‘여기가 아프다’며 계속 울었다. 나는 병원에 가야 되지 않냐며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친구는 그것이 아니라며, 그저 마음이 아프고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밀며든다며 인생이 너무 허무하다며 눈물을 뚝뚝 흘렸던 것이었다.
그렇게 그 친구는 그 자리에서 주님을 영접했고, 교회에서 잘 자랐으며,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전도사님 가정에 시집가서 아주 잘 살고 있다.
그 친구와 성경을 읽는 내내 나는 정말 그 친구에게 해 준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성경” 스스로가 그 친구의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었던 것이다. 그 자체가 능력이었다. 캠퍼스 전도를 하면서 복음을 풀어놓았던 나의 말들은 “성경” 자체의 능력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보잘 것 없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그날 분명하게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그날 이후부터 “성경” 자체에 대한 권위를 그 누구보다 확신하는 사람이 됐다. 그 어떠한 설명과 어떠한 증명도, 성경 자체의 파워를 대신할 수 없다고 믿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히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