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동시에, 사람이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썼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는 복음서를 읽을 때, 두 가지 관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복음서에서 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도에는 전혀 차이가 없다. 둘째, 서로 다른 사람들이 기록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점이 다르게 묘사될 수 있다. 마치 정물화를 그리는 사람들처럼, 동일한 화병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지만 화병을 보는 위치와 자세에 따라서 다른 그림을 그리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즉, 복음서들이 다르게 묘사된 이유는 기록한 사람들의 개인차 때문이다. 왜 이러한 개인차가 있는가?
1) 기록 당시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되었을 때 기록하였고, 마가는 베드로를 따라다니다가 로마에 남게 되었을 때 베드로의 설교를 기억하면서 썼으며, 누가는 역사가의 관점에서 예수님에 대한 사실을 차례대로 서술했다.
2) 표현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이야기를 듣고 이것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려고 할 때, 외우지 않는 한 처음에 말한 사람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조금씩 다른 표현의 문장으로 말할 수 있고, 다양한 동의어들을 무작위로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면 생략하기도 하고, 강조하고 싶을 때는 부연설명을 하게 되는 것이다.
3) 개인이 가지고 있는 관습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마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사물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는지 약자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는지에 따라서 기록하는 방법은 확연한 차이를 가져올 것이다.
이 외에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다(벧후 3:16)”는 것이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반드시 존재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러한 차이가 생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러한 차이는 곧 복음서의 기록들이 모두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복음서의 저자들이 모든 사건들을 동일한 표현으로 기록했다면 이것이 오히려 더 의심스러운 것일 가능성이 높다. 세상에서도 재판을 할 때 증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 증언들이 얼마나 유사한가를 따져본다. 즉, 증언이 100%에 가깝도록 유사하면 유사할수록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미리 계획하여 스토리를 마련해서 외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음서들이 서로 다른 묘사를 하고 있다는 것은, 저자들이 기록하고 있는 예수님의 사건이 모두 “진실”이라는 것을 더욱 입증해 준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