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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Q&A

Public·2 members

노아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드셨지만 결국은 가나안이 범죄해서 저주를 받았잖아요...

만약에 노아의 자손들이 세상 문화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만 따르면서 살았다면, 에덴동산처럼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그랬다면 전쟁도 없고 평화롭게 잘 살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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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M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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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sep

글쎄요… 시기가 좀 늦춰질 수는 있었겠지만,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세상의 악한 문화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요?

왜 가인의 제사는 안 받으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어요?

실제로 나였어도 가인처럼 열심히 수고한 것들의 일부를 하나님께 드렸을 것 같은데, 가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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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M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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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sep

  “00때문에 제사를 받지 않았다”라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정답은 모릅니다만, 저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가인의 성품(성경구절에서 확인: 분하게 여김, 거짓말, 내가 아벨을 지키는 사람이냐...)을 볼 때, 제사드릴 때의 가인의 진심이 하나님께 들켰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준 선물을 기쁘게 받지 않았다고 해서 분노하면서 화를 드러낸다면, 그 사람은 어쩌면 대가(나의 오버하는 감사 반응, 감격하며 칭찬하는 말, 또는 이에 상응하는 선물 등)를 바랐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조금 서운할 수는 있겠으나 분노할 것은 아니지 아닐까요? 더욱이, 진정한 선물(섬김)은 상대가 반응(감사의 표현, 사람들의 인정)을 보이지 않아도, “내가 그에게 기쁨을 주었다”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속마음도 보실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니신 하나님은 가인의 깊은 내면을 그 자리에서 저절로 대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적인 선이신(죄의 티끌도 접하실 수 없는) 하나님은 자동적으로 이러한 가인의 제사는 받으실 수 없었던 것이지요. 사람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배려해서 기쁘게 받는 척을 하실 수 없으십니다.

     제가 보는 관점은 이렇습니다만… 여러분 스스로의 해석을 가져보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해서 세상문화가 들어와서 타락했다는데…

세상에 들어가라고 하면서 들어가면 타락하고…

전도하려고 해도 세상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런데 창세기에는 세상문화가 들어와서 타락했다고 하니... 그렇다면 세상문화는 처음부터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던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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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M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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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sep

세상에 들어가서 내가 그들 문화에 물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똑바로 서서,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만이 이 분별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 것 말고, 스스로가 직접 성경을 읽고 말씀의 능력을 경험해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 38장은 왜 들어가 있는 것일까요?

창세기 37장부터는 요셉 이야기가 나오는데, 갑자기 38장에서 유다 이야기가 나와요. 그리고 다시 39장부터 요셉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38장은 왜 갑자기 등장한 것일까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요? 좋은 내용도 아니고,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속여 관계를 갖고 임신을 했다는 내용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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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M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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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sep

   하나님은 완전한 “선(善)”이십니다. 티끌만한 죄와도 대면하실 수 없는 신적인 속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니 죄가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보게 되면 그 자리에서 즉사를 했지요.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의 예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즉, 하나님께 있어서는 죄가 “있냐? 없냐?”가 문제지, 죄가 얼마나 “많냐? 적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한테는 모든 인간이 동일하게 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다와 며느리의 잘못이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방 나라에 태어나 이방 신을 섬기게 된 것이나, 하나님께 있어서는 둘 다 죄일 뿐입니다. 누구 잘못이 더 크다거나 작다라고 말할 게 못 됩니다.

   그리고 유다가 이후에 축복을 받았다고 해서 하나님이 이들의 잘못은 눈감아 주셨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유다가 벌을 받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저지르는 잘못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상대방이 나보다 더~ 잘못했는데, 왜 나만 이렇게 야단맞는 것인가’ 하면서 억울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상대방이 대가를 치르는 것이 나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 반드시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렀을 것입니다. 아브라함, 야곱, 다윗 등등 하나님이 아끼신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대가를 어떻게 치렀는지 기록돼 있잖아요…

   잘못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세상의 가치관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인 죄인이기 때문에 그분 앞에서는 죄가 ‘많냐/적냐’가 아니라 ‘있냐/없냐’를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왜 벌을 안 받지?”라는 데 관심 갖지 말고(내가 모를 뿐이지 분명히 벌을 받을 테니까), “나의 잘못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알려주시는 것이 있다면 얼른 회개해서(상대방에게 사과하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회개입니다.), 주시는 은혜로 “기쁨과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38장은 이러한 깨달음을 주기에 매우 유익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유다의 자손으로, 그 계보를 이어서 예수님이 나시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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