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2.02.
말씀: 누가복음 10:25~37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서 예수님께 질문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①_______________________?”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에 다시 율법교사에게 질문하셨다.
“②___________에 뭐라고 기록되었는가?”
예수님이 이렇게 질문하신 것은, 이 사람이 율법교사이니 율법을 잘 알 것이고, 자신이 믿고 있는 율법에서 그 대답을 찾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가장 확실한 대답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율법교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고 하였습니다.”(27절)
역시 그는 율법교사답게 정답을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다.
“그대로 ③____________________. 그러하면 살 것이다.”
이 말씀은, 율법교사가 말씀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뜻이 된다. 아마도 율법교사는 억울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교사는 누구보다 율법을 잘 지키려고 노력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는 말씀에 따라 자신의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사랑을 베풀어 왔다. 그런데 율법대로 살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니, 억울했을 것이다.
그래서 율법교사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보이고 싶어서 다시 질문했다.
“그러면, ④__________________ 누구입니까?”
여기서 사용된 단어는 유대적 어법상 집단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유대인들은 이 단어를 동족, 즉, 같은 종교권에 있는 사람이나 같은 유대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니 아마도 이 율법교사는 자신의 이웃인 동족에게 많은 선행을 베푼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까 당당하게, 29절의 기록대로,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님께 질문했던 것이다. “나는 율법대로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있어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인가?
예수님은 이것을 가르쳐 주시려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흔히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이 나쁜 사람이고 사마리아인이 착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현대 한국인의 관점에서 볼 때 비인간적인 행동이라는 것이지, 그 당시 유대인의 관점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신중한 행동으로 여겨질 수 있다. 왜냐하면,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서 특별히 구별된 사람들로서, 시체를 만지는 것과 같은 부정한 것을 항상 멀리해야 했던 사람들이다. 이것은 율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래서 이들은 율법을 잘 지키려고 시체(옷이 벗겨진 채 거의 죽게 된 사람은 시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를 피해서 지나갔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율법교사는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있고, 제사장과 레위인도 자신의 직분에 맞게 부정한 것을 멀리하며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의 핵심은, 이들이 ⑤__________을 잘못 해석했다는 데에 있다. 율법교사나, 이야기 속의 제사장과 레위인이 따르고 있는 ⑤__________은 자신들이 규정한 것이지 하나님이 진정으로 바라시는 뜻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후에 율법교사에게 질문하셨다.
⑥“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율법교사가 대답한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이 결론을 지으며 마지막 말씀을 하신다.
“가서, ⑦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 대화에서 무엇을 발견했는가?
율법교사는 “누가 내 이웃인가?”를 질문하였고, 예수님은 “누가 그의 이웃이 되어주었나?”를 질문하셨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관점이다. “나의 이웃 vs 그의 이웃”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겠는가?
즉, 율법교사는 “이웃”을 ⑧________이 선택하는 입장에서, 이방인들은 물론이고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웃”의 범주에서 제외시켰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웃”을 ⑨__________이 선택하는 입장에서, 그가 누군인가는 중요하지 않고 그가 나를 이웃으로 여겨주느냐가 중요하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이웃'에 대한 유대교적 관점을 파기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주님이 진정으로 바라시는 뜻은 무엇인가? 나의 행동이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 합당한 행동이 되려면, ⑩________________________ 여길 만한 행동을 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내 이웃이 누구인가를 찾을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나는 진정한 이웃이 되어주고 있는가를 질문해야 할 것이다!
1) 영생을 얻겠습니까? 2) 율법 3) 행하여라 4) 내 이웃이 5) 율법 6)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는가? 7)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8) 자신 9) 상대방 10) 상대방이 나를 이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