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뿐만 아니라 성경 대부분을 보면 언제나 피할 길을 주시잖아요. 계시록에서도, 환난의 때에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는 건지시겠다고 하시잖아요. 그런데 전체 맥락에서의 번복은 아니고요,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항상 존재한답니다.
성경 말씀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기준으로 해석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볼 때, '말을 번복하신다'는 관점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반성하고 돌이키기를 바라는 “오래 참으심”으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도 “한 번만 더 해 봐, 그만하라고 했지? 세 번 만에 그만 둬. 하나, 둘, 둘 반, 둘 반의 반, 둘 반의 반의 반…… “ 이러면서 부모들의 속이 터지지요... 어쩌면 하나님도 이처럼 길이 참으면서 기회를 더 주고 계시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그 목적이 심판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돌이키고 돌아오기를 바라며 우리를 아름답게 빚어가지고 싶은 주님의 소원을 담은 메시지입니다.
요한계시록뿐만 아니라 성경 대부분을 보면 언제나 피할 길을 주시잖아요. 계시록에서도, 환난의 때에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는 건지시겠다고 하시잖아요. 그런데 전체 맥락에서의 번복은 아니고요,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항상 존재한답니다.
성경 말씀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기준으로 해석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볼 때, '말을 번복하신다'는 관점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반성하고 돌이키기를 바라는 “오래 참으심”으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도 “한 번만 더 해 봐, 그만하라고 했지? 세 번 만에 그만 둬. 하나, 둘, 둘 반, 둘 반의 반, 둘 반의 반의 반…… “ 이러면서 부모들의 속이 터지지요... 어쩌면 하나님도 이처럼 길이 참으면서 기회를 더 주고 계시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그 목적이 심판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돌이키고 돌아오기를 바라며 우리를 아름답게 빚어가지고 싶은 주님의 소원을 담은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