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7장부터는 요셉 이야기가 나오는데, 갑자기 38장에서 유다 이야기가 나와요. 그리고 다시 39장부터 요셉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38장은 왜 갑자기 등장한 것일까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요? 좋은 내용도 아니고,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속여 관계를 갖고 임신을 했다는 내용이잖아요...
온라인 예배(10:30)
<우리교회가 지원하는 교회>
[CSL 선교회] 홈페이지입니다.
[CSL 아카데미] 홈페이지입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이곳에서는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일 뿐 정답을 제시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목적은 성경통독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더욱 알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자유롭게 질문하고 자유롭게 생각을 나눠 주세요~
동경은혜선교(TGM) 교회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데 힘쓰는 교회입니다.
이를 위해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을 깊이 아는 것과 그분의 사랑을 생활 속에서 흘려보내는 법을 배워갑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성도들은, 자신의 일터와 가정에서 한 사람의 선교사로 살아가며, 기도하는 모든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참크리스천으로 자랍니다.
동경은혜선교 교회는 복음의 통로로 학원 사역에 주력합니다.
CSL선교회에서 운영하는 CSL아카데미를 통해서 교회가 지역 주민들의 배움터로 사용됩니다.
또한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가정의 자녀교육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방과후 교실을 통하여 직장맘의 육아를 돕습니다.
이로써 성도들은 지역 사회에 공헌하고 넌크리스천들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접하는 다양한 영역에서 우리는 무수한 선택들을 하게 됩니다.
이때, 과연 어떤 선택이 성경적인 선택인가를 고민하게 되는데, 그 선택의 원리를 성경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을 정립하고, 행동하는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법을 성경에서 배우고 실천합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선(善)”이십니다. 티끌만한 죄와도 대면하실 수 없는 신적인 속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니 죄가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보게 되면 그 자리에서 즉사를 했지요.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의 예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즉, 하나님께 있어서는 죄가 “있냐? 없냐?”가 문제지, 죄가 얼마나 “많냐? 적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한테는 모든 인간이 동일하게 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다와 며느리의 잘못이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방 나라에 태어나 이방 신을 섬기게 된 것이나, 하나님께 있어서는 둘 다 죄일 뿐입니다. 누구 잘못이 더 크다거나 작다라고 말할 게 못 됩니다.
그리고 유다가 이후에 축복을 받았다고 해서 하나님이 이들의 잘못은 눈감아 주셨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유다가 벌을 받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저지르는 잘못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상대방이 나보다 더~ 잘못했는데, 왜 나만 이렇게 야단맞는 것인가’ 하면서 억울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상대방이 대가를 치르는 것이 나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 반드시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렀을 것입니다. 아브라함, 야곱, 다윗 등등 하나님이 아끼신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대가를 어떻게 치렀는지 기록돼 있잖아요…
잘못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세상의 가치관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인 죄인이기 때문에 그분 앞에서는 죄가 ‘많냐/적냐’가 아니라 ‘있냐/없냐’를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왜 벌을 안 받지?”라는 데 관심 갖지 말고(내가 모를 뿐이지 분명히 벌을 받을 테니까), “나의 잘못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알려주시는 것이 있다면 얼른 회개해서(상대방에게 사과하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회개입니다.), 주시는 은혜로 “기쁨과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38장은 이러한 깨달음을 주기에 매우 유익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유다의 자손으로, 그 계보를 이어서 예수님이 나시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