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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a Lee
2021년 12월 03일
In 말씀&칼럼
2021. 12. 05 사도행전 18:6-17 디모데와 실라가 합류하자, 이제 바울은 본격적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이를 반대하고 비방했다(6절). 얼마나 지독하게 비방했으면 바울이 옷에서 먼지를 떨고, “여러분이 멸망을 받으면, 그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책임이지 나의 잘못은 아닙니다. 이제 나는 이방 사람에게로 가겠습니다.(6절)”라고 했을까… 실제로, 그 당시의 바울은 ‘약하였으며, 두려워하였으며, 무척 떨었었다(고전2:3)’. 흔히, 우리가 기억하는 바울은 강한 천하무적 같은 이미지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떨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친히 바울을 위로하셨다(9-10절). 그리고 디디오 유스도라고 하는 사람을 붙여주셨다. 그는 이방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다(7절). 그는 바울의 처지가 안타까워서 자신의 집을 오픈해서 바울이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도왔던 것이다. 그의 집은 바로 회당 옆에 있었다(7절). 이로 인해, 회당장 그리스보가 그의 온 집안 식구와 함께(8절) 세례를 받았고, 디디오 역시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디디오와 가이오는 동일인물; 고전1:14, 내가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리스보와 가이오 밖에는 아무에게도 세례를 준 일이 없음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에 더 화가난 유대인은, 갈리오가 아가야 주의 총독(12절)으로 새로 부임해 판단이 흐려져 있는 틈을 노리고 바울을 재판정에 세웠다. 그러나 갈리오*는 전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의 고소는, 바울이 로마법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이비종교를 퍼뜨린다는 것이었다(13절). 이에 갈리오는, “…사건이 무슨 범죄나 악행에 관련된 일이면 내가 여러분의 송사를 들어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오. 그러나 문제가 언어(로고스, 하나님의 말씀)와 명칭(오노마타, 메시아의 이름)과 여러분의 율법(노모스, 유대 교리)에 관련된 것이면 여러분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시오…(14-15절)”라며, 바울에게 변론할 기회도 주지 않고 즉시 이 안건을 기각시켰다. 이는 로마법의 정교분리원칙(政敎分離原則)을 따랐던 것이다. 그리고는 이들을 자신의 법정에서 몰아냈다(16절).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망신스러운 상황인가! 더욱이 업친 데 겹친 격으로, 회당장 소스데네가 붙들려서 재판정 앞에서 몰매를 맞았다(17절). 유대인들이 분풀이로 리더를 때린 것인지, 아니면 반유대주의 감정이 가득했던 헬라인들이 흥분해서 달려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어쨌거나 회당장 소스데네가 희생양이 되어 몰매를 맞았다. 놀라운 사실은, 이 결과로 소스데네가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은, 바울의 3차 전도에서 소스데네가 바울과 함께 사역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나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고전1:1-2) 오늘 사건 전체에서 바울은 무엇을 하였는가? 그는 그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목격한 증인이었다. 하나님이 지쳐 있던 바울을 위로하셨고, 디디오의 집을 열어주셨고, 갈리오를 사용하셔서 유대인을 몰아내 주셨고, 그리스보와 디디오와 소스데네를 동역자로 붙여주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교이다.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이루어 가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공감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선교’가 이뤄지는 장면 안으로 들어오도록 불러 주신다. 그 영광스러운 장면을 목격하는 증인으로 발탁되는 것이야 말로 인생 최대의 영광이 아니겠는가! 조금이나마 "하나님의 선교" 안에 당신과 나의 몫이 들어 있기를 소원한다. -------------------------------------------------- 이번 한 주간은, ‘하나님의 선교’의 장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갈리오 본명은 마르쿠스 안네우스 노바투스(Marcus Annaeus Novatus)로, 스페인 출신이다. 그의 형은 스토아 철학의 대가인 세네카(Seneca)이다. 세네카는 아주 유명한 철학자로, 네로 황제의 스승이기도 했다. ‘로마를 세네카가 다스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였다. 갈리오의 아버지는 갈리오와 세네카의 교육을 위해서 대제국 로마로 와서 원로원의 의원이 되었을 뿐 아니라, 두 아들을 더 좋은 집안에서 양육시킬 욕심으로 루키우스 유니우스 갈리오(Lucius Junius Gallio)라는 로마제국 수사학의 대가 집으로 양자로 보낸다. 이처럼 갈리오는 어릴 때부터 탄탄한 교육을 받으면서 매우 합리적이고 인격적인 사람으로 자랐다. 그의 형 세네카는 “갈리오가 모든 사람에게 하는 것만큼 그 어떤 사람도 그토록 모두를 기분 좋게 하지 못 한다”라고 칭찬한 바도 있다. 또한 주변 사람들로부터는, 독창적이며 청렴결백하고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였다는 평을 들었다. 갈리오는 A.D. 65년 네로를 제거하기 위한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았는데, 그때 로마 황제 네로로부터 자살할 것을 강요 받고는, 깨끗하게 자결함으로서 로마에 대한 충성을 보였다.
[주일말씀] 하나님의 선교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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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a Lee
2021년 8월 13일
In 말씀&칼럼
2021. 08. 15. 사도행전 14:19-28 오늘 말씀에서는 세 가지 “왜”라는 의문과 함께 그에 따른 교훈도 세 가지이다. 1) 이방인들이 왜 그랬을까? 유대인들이야 시기심이 발동해서 눈에 보이는 게 없다고 해도, 이방인들이야 시기할 게 뭐가 있어서 이렇게까지 흥분해서 바울에게 돌을 던졌을까(19절)? 사도행전 전체를 통해서 볼 때 바울이 핍박을 당한 이유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유대인들의 시기심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돈”이었다. 빌립보에서도 자신의 돈벌이가 끊어진 것 때문에 화가 난 사람들이 바울을 끌고가서 심하게 때려서 감옥에 가두었고, 에베소에서도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이가 바울 때문에 자기 밥줄이 끊기게 되니까, 사람들을 선동하고 모함해서 바울을 제거하려고 했다. 루스드라 사람들에게도 바울이 자신의 생계에 위협이 되었을 것이다. “돈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 같다. 돈은 언제나 하나님을 쉽게 배신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돈돈’하다가 언제 하나님을 배신하게 될지 모른다. “돈”이라는 단어를 머리와 마음에서 아주 지워버리자!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한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딤전6:10).” 2) 죽을 정도가 된 바울이 어떻게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20절)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일어나서”라는 말은 헬라어로 “안나스타스(αναστας)”라는 말로, “일어나다”라는 자동사와 “일으켜 세우다”라는 타동사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또한 예수님께서 “내가…십자가에 못 박혀 죽겠지만…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것이다(마20:19).”라고 하신 말씀에서 ‘살아나다’란 단어로도 사용되었다. 즉, 하나님이 바울을 죽음에서 살려서 벌떡 일어나게 하셨고, 바울은 성령에 이끌려서 성 안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이전에 베드로에게 일어났던 사건처럼 말이다(밤에 주님의 천사가 감옥 문을 열고…행5:19-20). 주님은 당신의 복음을 위해서 생명을 살리시기도 하고 죽이시기도 하실 수 있는 분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복음과 관련되었을 때에 명백히 드러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주님은 복음을 위해서 이땅에 오셨고, 복음을 위해서 우리를 제자로 부르셨다. 우리가 복음의 역할을 다할 때에 주님의 능력을 더욱 확실히 체험하게 될 것이다. 복음을 위한 기도와 복음을 위한 선택들을 하자. 3) 바울은 이제 2주 정도만 더 가면 1차 선교를 마무리하고 본교회(안디옥)로 돌아간다. 그런데 바울은 거기서 방향을 돌려 1년이나 더 걸려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몸도 많이 상했고, 교통도 아주 불편하고, 무엇보다도 지독한 유대인들이 바울을 잡으려고 혈안이 돼 있는데 말이다. 왜 그랬을까? 만약 바울이 지금 이대로 본교회로 돌아갔다면 아마도 1차 선교의 열매는 시들해졌을 것이다. 안그래도 온갖 핍박에 두려워하고 있는 초신자들인데, 바울이 죽도록 돌에 맞아 본교회로 돌아갔다는 소문을 듣게 되면 거의 모두 신앙을 버리지 않겠는가. 바울은 자신의 안위보다도 이들을 굳건히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흔히들 무엇이 성경적인가를 따져 보기도 전에, 일단 나의 안전과 평안을 먼저 확보한다. 내 감정이 먼저이고 내 주장이 먼저이고 내 이익이 먼저인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중요한가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주님은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마16:25).”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우선순위로 하자. ------------------------------------------------------------- 오늘 우리는 세 가지 교훈을 깨달았다. 1) 돈은 하나님을 배신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돈’이라는 단어를 머리와 마음에서 완전히 지워 버리자. 2) 하나님의 능력은 복음을 통해서 가장 확실하게 체험할 수 있다. 복음을 위한 기도와 복음을 위한 선택들을 하자. 3) 자신의 안위보다 진리(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를 고수하는 것이 우선이다.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우선순위로 하자.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이번 한 주간 나의 실천은 무엇인가? 오늘 깨달은 세 가지 교훈 중에서 어떤 실천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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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a Lee
2021년 7월 17일
In 말씀&칼럼
2021. 07. 18 사도행전 13:44-52 지난주에 우리는, 일부 유대인들이 바울이 전한 말을 듣고는 다음 안식일에도 이런 말씀을 전해 달라고(42절) 청하는 장면을 보았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 “다음 안식일”의 내용이다. 오늘은 온 동네 사람이 거의 다 모여들었다(44절). 유대인들은 도대체 어떤 말씀을 또 전해 달라고 했으며, 동네 사람들은 무슨 말을 듣고 싶어서 이렇게 많이 모였을까? 유대인들이 진정으로 갈망했던 것은 바로 “자유”였다. 바울은 이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케하는 복음(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을 전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율법 가운데 하나라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으며(신명기27:26), 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도 한 조목에서 실수하면 전체를 범한 셈(약2:10)이 된다고 배웠다. 이들에게는 언제나 죄의 문제가 가장 큰 짐이었다. 그러니 바울이 전한 진리는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또다른 유대인들은 이렇게 열광하는 무리들을 보고 시기심으로 가득 차서 바울과 바나바가 한 말을 반박하고 비방했다(45절). 그리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경건한(영향력 있는) 귀부인들과 그 성의 지도층 인사들을 선동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였고 그들을 그 지방에서 내쫓았다(50절). 만일 이들이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았다면 이러한 시기심에 갇혀 있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이다. 사탄은 우리를 시기, 질투, 두려움, 걱정, 교만, 자책 등으로 꼼짝 못하게 묶어두려 한다. 진리를 알면 사탄에게 속지 않을 수 있다.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다. 이제 바울 일행은 더 이상 이들에게 할 말도 없고 미련도 없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갔다(51절). 바울은 진리가 무엇인지 잘 알기에 그 어떠한 것으로도 바울을 묶어둘 수 없다. 자신의 최선을 다하고, 그런 다음에는 전능자이신 주님께 맡기고 훌훌 털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자유인”의 자세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스트레스란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들 어떤 일에 장애가 생기면 실패한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우리는 성공하라고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충성하라고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성공도 실패도 없다. 당신은 진정한 자유인인가? 시기질투, 걱정과 두려움, 우월감이나 자괴감, 성공과 실패에 대한 책임, 사람들의 평가, 온갖 스트레스…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운가?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 한 주간 당신은 무엇을 버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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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a Lee
2021년 7월 09일
In 말씀&칼럼
2021. 07. 04 사도행전 13:4-12 오늘 본문은 최초의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가 안디옥 교회라는 것을 보여준다. 안디옥 교회는 자발적으로 두 명의 선교사(바나바와 바울)를 떠나 보내는데, 이제 막 세워진 교회, 그것도 다소 불안해 보이는 구성으로 짜여진 이방인 교회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 두 사람을 보낸다는 것은 잘못된 판단으로 보인다. 그러나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을 돕는다”는 말처럼, 복음의 감격을 경험해 본 사람들(안디옥 교회)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간절한 것 같다. 이렇게 키프로스 섬으로 떠난 바울 일행은 제일 먼저 살라미(5절)라는 곳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온 섬을 가로질러 바보라는 곳까지 갔다(6절). 거기서 그들은 바예수라고 하는 유대인 마술사를 만났(6절)는데, 그는 총독을 곁에서 보필하는 유대인으로서 거짓 예언자였다(6-7절). 특히 8절에 그가 ‘엘루마’라고도 불렸다는 언급으로 보아 그가 박수(요술장이, 마법사)였음에 틀림없다. 그가 총독의 명령으로 바울 일행을 총독 앞으로 데려갔다. 성경은, 이 총독(서기오 바울)을 총명한 사람(7절)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그가 본문 끝에서 보인 반응은 “주님의 교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12절)”이다. 총명한 사람은 반드시 모든 상황에서 교훈을 찾기 마련이다. 그는 과연 어떤 면에서 총명했을까?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그는, 총독이라는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다소 외골수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을 법도 한데, 전혀 편견이 없는 사람이었다. 별볼일 없는 타지역 사람을 일부러 불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였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인격이 아닐 수 없다. 둘째로 그는, 8절에 언급된 것처럼 바예수의 필사적인 방해에도 불구하고 측근의 말에 쉽게 홀리지 않고 끝까지 바울 일행을 자주 만났다. 총명한 사람은 측근의 감언이설에 흔들리지 않는다. 셋째로 그는, 오늘 본문의 사건을 그냥 하나의 이벤트로 여기지 않고, 그 속에서 주님의 교훈(12절)을 찾았다. 타인의 불행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줄 아는 총명함이 있었던 것이다. 한편, 사도 바울은 바예수에게 “너, 속임수와 악행으로 가득 찬 악마의 자식아, 모든 정의의 원수야, 너는 주님의 바른 길을 굽게 하는 짓을 그치지 못하겠느냐?”(10절) 라며, 호되게 야단친다. 세계적인 심리학자인 이안 로버트슨은 악행이라는 말은 본래 경솔하거나 무절제한 행위를 의미한다고 했다. 말 그대로, 악행은 언제나 경솔하게 내뱉는 한 마디로부터 시작되며,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이것이 바로 악행이다. 이후, 바예수는 눈이 멀어서 앞을 더듬어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11절). 그리고 이 일로 총독은 주님을 믿게 되었고, 주님의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되었다(12절). 과연 서기오 바울 총독이 찾은 ‘주님의 교훈’이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는, 경솔함과 무절제한 행동이 악행임을 가슴 깊이 새기며 평생 훌륭한 그리스도인 총독으로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자, 이제 우리가 대답할 시간이다. 당신은 주님의 교훈으로 어떤 것을 찾았는가? 각자의 결단을 주님 앞에서 신실하게 실천하는 한 주간을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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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a Lee
2020년 9월 21일
In 말씀&칼럼
2020. 09. 20. 누가복음 22:14-23 드디어 저녁이 되어서 예수님과 12제자가 모두 함께 모여 앉았다.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 자리… 얼마나 애틋하고 감격스러운 자리인가? 유월절 의식은, 오늘을 기점으로 그 의미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이제는, 양을 잡아 문설주에 뿌리던 과거를 기억하는 유월절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성찬의 정신을 기억하는 날이 된 것이다. 성찬의 정신은 다음 세 가지이다. 1. 기대와 소망 예수님은 첫 번째 잔을 받아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이것을 받아서 함께 나누어 마셔라……나는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에서 난 것을 절대로 마시지 않을 것이다.” (17절-18절) 이 말씀은 우리에게 약속하시는 말씀이다. 우리가 반드시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주시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올 때까지 잔을 들고 간절히 기다리고 계신다. 따라서 성찬 의식은 주님과 함께 식사하게 될 날을 기대하는 기쁨의 의식인 것이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가 올 때까지 우리를 기다리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니 주님과 함께 할 그 날을 기대하며 ‘하나님 나라’를 향해 힘차게 달려가야 할 것이다. 2. 회개와 결단 그리고 예수께서는 또 빵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떼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19절)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시면서 그 몸이 이 빵처럼 갈기갈기 찢어지셨다. 우리의 죄값을 이런 식으로 치르셨던 것이다. 따라서 성찬 의식은 나의 죄성을 깨닫는 의식이다. 이렇게 떡을 잘라내면서, 우리의 악한 본성이 주님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 그동안의 잘못을 회계하고, 두 번 다시는 주님의 몸을 찢는 악한 마음을 먹지 않도록 단단히 결단해야 할 것이다. 3. 새 생명과 관리 이제 식사 후에 다시 잔을 드시고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20절) 하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몸 속의 피와 물을 모두 쏟아내어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넣어 주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찬 의식은 내가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하는 의식이다. 나는 죽고 오직 내 안에 예수님의 생명만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항상 내 속의 영이 살아있도록 거룩함을 지키고, 나의 몸 또한 건강하고 생기 넘치게 잘 관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성찬의 정신을 평범한 식탁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소망과 결단과관리의 마음으로 식탁을 준비하고, 매일의 식탁에서 성찬의 정신을 새기도록 하자! -------------------------- 성찬의 정신을 새기면서 식탁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세 가지 정신 중에서 특별히 신경써서 실천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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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a Lee
2020년 9월 16일
In Books
아마도 '짐 콜린스'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출판사가 제시한 저자 소개는 대략 이런 내용이다. "그는 현존하는 세계 최정상급 베스트셀러 작가로 세계의 많은 리더들에게 자문을 제공해온 경영 컨설턴트이다. 저서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과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는 지속적 성장을 도모하는 기업들이 반드시 따라야 할 통찰을 제시하는, 이 시대 최고의 경영서적으로 평가받는다......" 비록 이 책이 기업에 관한 내용이기는 하나, 교회와 개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선교사역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나는 협력 선교사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뼈아픈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단순히 그의 열정만 보고 선발했다가 3개월만에 공동체가 해체될 위험에 빠졌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 책에서 말하는 몰락의 두 번째 단계에 있었던 것 같다. 과도한 업무를 줄이고자, 서둘러서 핵심 요직에 비적임자를 배치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즉시 멈출 것을 선택했고, 핵심 가치만 남기고 나머지는 변화와 혁신을 시도하여 겨우 수습할 수 있었다. 저자의 표현대로, “한 개인이 지속가능한 위대한 기업을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 권력을 쥔 잘못된 리더 한 사람이 기업을 몰락으로 이끌 수 있다. 그만큼 적임자를 잘 뽑는 일이 중요하다(P.89).” 결국, 이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따라서, 먼저 함께 가기에 적합한 사람을 찾고, 그 다음에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책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핵심 요직에 맞는 적임자를 판단하는 기준>*은, 앞으로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아무리 적임자를 찾아 함께 일한다 해도, 어떠한 경우에도 몰락하지 않을, 최적의 해답은 없는 것 같다. 위대한 사역은 위기 상황이 전혀 없는 사역이 아니다. 위기에도 불구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저력을 가진 사역이다. 그러니 우리의 최선은, 저자의 주장대로, 핵심 가치(복음)만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사역(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을 하겠다는 희망을 접는 순간, 사역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생도 몰락하게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심 가치를 중심 기둥으로 놓고 그 이외의 것들은 지속적으로 변화와 혁신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반드시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되 탐욕과 자만심은 결코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 * <핵심 요직에 맞는 적임자를 판단하는 기준> 1. 기업의 핵심 가치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 2. 엄격하게 통제할 필요가 없는 사람 3. 단순히 '직장'을 찾은 것이 아니라 '책임감'이 주어졌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 4. 약속한 것을 반드시 이행하는 사람 5. 회사와 일에 열정이 있는 사람 6. '창문'과 '거울'을 구분하는 성숙한 사람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짐 콜린스)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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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a Lee
2020년 9월 14일
In 말씀&칼럼
2020. 09. 06. 누가복음 22:1-13 유월절을 준비하고 있는 두 그룹이 있다. 1.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의 모임 유월절 축제일이 다가오자 유대인들은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유대인의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유월절 준비는 커녕 (1. )를 없애버릴 방책을 찾고 있다(2절). 이들은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에 의해 폭동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해, 유월절 전에 예수를 조용히 없애버리고 싶어했다. 이때 행운이 굴러들어왔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이 모임에 합류한 것이다(4절). 이제 이 모임의 일원이 된 유다는 무리가 없을 때 예수를 넘길 기회(6절)를 찾으며 비밀리에 유월절 준비를 한다. 2. 예수님이 주도하는 모임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을 조용히 따로 부르시고, 비밀리에 유월절을 준비하라(8절)는 특명을 내리신다. 왜냐하면 유다에게 유월절 장소를 들키게 되면 주님이 그토록 바라시는 (2. )의 기회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간절한 심정(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음식을 먹기를 참으로 간절히 바랐다-15절)으로, 아무도 모르게 유월절을 준비시키셨다. 마치 첩보작전처럼, 물 한 동이를 메고 오는 남자를 따라가서(10절) 그 집의 주인에게 '그 방이 어디에 있느냐(11절)'고 묻고, 집주인이 안내하는 방에다 유월절 식탁을 준비해 놓으라고 말이다. 이제 두 제자는 그 집에서 유월절 식탁을 차리고 있다(13절). 곧 날이 저물면 예수님과 나머지 10명의 제자들이 이 다락방에 합류할 것이다. 이 10명 안에 유다가 있다. 3. 두 모임 사이에 선 유다 유다는 비록 대제사장들의 모임에 갔다오긴 했지만, 아직은 예수님의 모임에 속해 있다. 그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그는, 한 손에는 성경을 쥐고, 다른 한 손에는 돈을 쥐고 있는 것이다. 사탄은 아무나 유혹하지 않는다. 양손에 (3. )을 쥐고 있는 사람을 유혹한다. 우리 자신의 손을 보자. 한 손에는 분명 성경을 쥐었을 것이다. 그러면 다른 한 손에는 무엇을 쥐고 있는가? 돈인가, 세상의 즐거움인가, 커리어인가… 이런 것들을 한 손에 쥐고 있다면 당장 버리자. 만일 버리기 아까운 생각이 든다면, 유다처럼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지금 마지막 때의 징조를 보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다. 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그 선택은 우리 자신의 (4. )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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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a Lee
2020년 9월 10일
In Books
20년 전에도 이 책은 선교 관심자들에 아주 유명한 책이었다. 책읽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 책은 재미있게 잘 읽는 것 같다. 나도 당시에, 작은 내 방 전체에서, 내 심장 뛰는 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으면서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 나는, 어느덧 이들처럼 선교사가 되어 이 책 앞에 앉아 있다. 이들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영성과 전략으로 선교지에 서 있지만, 선교사를 꿈꾸던 내 첫 심장 소리만큼은 여전히 잊지 않고 있다. 오늘은 단순한 호기심과 기대가 아닌, 이들에게서 뭐라도 얻어내려는 각오로 다시 이 책을 꺼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끊임없이 질문했다. 어떤 경우에는 그대로 철수하고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대답을 했고, 어떤 경우에는 끝까지 사역지를 지켜낸다는 대답을 했다. 과연 어떤 것이 정답일까…? 한편, 재물과 성적으로 타락해 버린 선교사의 일화를 보면서는 비난보다는 측은한 생각이 먼저 들게 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어쩌면,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이 직접 겪어 보지 못한 선교지의 상황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개인적인 신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선교지는 그 어떤 선교사에게나 동일하게 외롭고 척박한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교제가 소원해지는 순간 무방비 상태의 하루살이가 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사실은, 누가 보아도 너무나 명백하게 실패한 선교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 끝을 붙잡고 이어 가셔서 “하나님의 선교”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타락한 선교사의 끝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지금 나의 선교 현장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내가 얼마만큼 하나님과 가깝게 붙어 있는가를 점검하는 일이다. 당장 내일 아침의 새벽 예배를 준비하고, 당장 내일 만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전략을 구상하고, 당장 내일 예정된 일정을 놓고 기도하는 것은 잠시 미뤄도 될 것 같다. 당장 지금은, 나와 하나님 사이의 거리를 측정해야겠다!
선교사 열전(루스 터커)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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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a Lee
2020년 5월 16일
In Books
이 책은 2016년에 발간된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의 후속작이다. 앞서 발간된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후속작을 먼저 읽는다는 것이, 사실 내 성격에는 아주 부대끼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허접하게나마 앞서 발간된 책의 논지를 대강 훑고나서야 이 책을 손에 들 수 있었다. 이 책은, 전작에 비해 덜 강렬했으나, 나를 행동하도록 만들기에는 충분히 강렬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머리 속에 떠다니는 단어들을 적어 보았다. 새로운 기술, 인간, 협력, 거버넌스, 가치, 리더십, 시스템, 사람중심…… 한 마디로, 이 책은 “인간 중심적이고 사회적 가치에 기반을 두는 기술 개발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한 감정이 안개처럼 깔려 있었다. “휴머니즘”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나로서는 그다지 반가운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제4차 산업혁명이 이 시대의 세계관을 어떻게 이끌어 가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어서, 이 시대의 기술을 대하는 기독교적인 관점을 고민하는 데에 유용한 참고서가 되는 책이다. 특히 이 책은, 기술이라는 것이 인간의 행동 양식과 정체성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에, 나 스스로가 선택하지도 않은 가치관이 기술의 변화에 의해 저절로 주입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그동안은 아무 생각없이 신기술의 해택을 누리기만 했구나 싶어 정신이 바짝 들었다. 따라서 나는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인간중심적’ 대안들을 활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 다만 제4차 산업혁명의 실체를 이해하는 참고서로 사용하면서, 이 기술들을 ‘신중심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활용하고자 한다. 이에, 저자가 성공적인 제4차 산업혁명을 위해 정부와 기업과 개인에게 요구한 실천사항을 다음과 같이 수정하여 제시해 본다. 첫째, 크리스천 정부 관계자들은 재빠르게 거버넌스를 구축하되 크리스천 기업 및 크리스천 시민단체와의 협력을 최대한 확보해야 할 것이며, 가능한 한 비성경적인 전통과 제도와는 경계를 쌓아야 할 것이다. 둘째, 크리스천 기업들은, 개발된 기술을 새로운 업무 환경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되 하나님 나라의 유익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투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을 갖고 기술을 개발하고 사용해야 할 것이다. 셋째, 각 크리스천들은, 새로운 기술을 성경적인 관점으로 탐구하고 실험하고 사용해야 할 것이며, 비성경적인 기술을 적용하는 정부와 기업에 대해 적극적인 수정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크리스천 리더들의 책임을 당부하고 싶다. 저자의 주장처럼,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모든 분야의 리더들은 기술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자신들의 결정으로 인해 영향을 받게 될 사람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선을 악이라고 하고 악을 선이라고 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천 리더들은, 자신들이 제4차 산업혁명의 기술들을 어떻게 다루고 사용하느냐 하는 것이 일반인들에게는 선악의 문제로 인식될 수 있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 더 넥스트(클라우스 슈밥)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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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a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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