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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 Sil Park
2020년 11월 15일
추수감사절 & 성찬식 & 11월 생일파티 (2020/11/15)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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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 Sil Park
2020년 1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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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브레이너드(1718-1747) 북아메리카 인디언 선교의 개척자 21세에 개종, 24세에 헌신, 29세로 생애를 마침. 미국 코네티컷의 헤덤에서 기독교 가정의 9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9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4살이 되던 해애 어머니도 돌아가시게 된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자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의 충족성에 대해 칼빈주의적 교리를 의심없이 받아들였다. 그의 고민은 부흥 운동가들의 강조로 그가 개인적 구원체험을 얻으려고 할 때 시작되었다. 그의 삶을 생각해볼때 그는 저주받은 사람들 중에 자기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구원받기위해서는 단지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복음주의적 설교가 그에게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1년 이상을 기도와 금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어느 주일 날 저녁 어두운 숲을 걸어가면서 그는 그의 영혼에 말할수 없는 영광의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환상이나 어떤 현상도 아닌, 그 전에는 품지 못했던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내적이해, 혹은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그는 하나님만을 높이고 우주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하여 자신을 생활을 복종시켰다. 1718년-1731년 어릴적부터 다소 침착한 성격이었으며 우울한 기분에 빠지는 경향이 있었다. 13살이 지날 때까지는 별 염려없이 "하나님 없이 세상에서" 지낸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1732년 겨울 (당시 14살) 육신적인 안일함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당시 헤덤에 나돌던 치명적인 전염병 때문에 크게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자주 끈질기게, 다소 열정적으로 기도에 힘썼고,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고, 특히 제인웨이 목사의 책을 읽고 기쁨을 얻었다. 때로는 신앙의 임무들을 행하는 데에서 큰 기쁨을 얻었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회심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혹은 내가 천국과 행복으로 가는 길에 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라기도 했다. 1732년 3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부터 무척이나 괴로웠고 우울에 빠졌다. 1733년 집을 떠나 이스트헤덤으로 향한다. "하나님 없이 세상에서" 살면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지만 선한양심으로 돌아온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깨닫게 된다. 1738년, 20살이 되었을때, 스스로 공부를 시작했고 신앙의 임무들에 더욱 열심히 정진하게 되었다. 헤덤교회의 목사님에게 가서 함께 생활하며 신앙적인 임무들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다. -몇몇 청년들과 함께 신앙활동을 위하여 주일 저녁마다 모임을 가짐 -모임이 끝나면 그 날 들은 말씀들을 홀로 되씹고 기억할수 있는 만큼 기억해 내느라 때때로 밤늦도록 애씀 -주일에 들은 설교 말씀들을 다시 기억하고 묵상함 이런 행동들을 통하여, 이렇게 행하는 여러 신앙적인 임무들에 그저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던것임을 깨닫게 됨. 1738년 초겨울의 어느 주일. 은밀한 임무들을 행하러 바깥으로 걸어가는 중에 불현듯 나의 위험한 상태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한 생각이 밀려와 나를 압도하였고, 나는 깜짝 놀라 멍하니 서있었다. 나의 죄와 사악함이 시야에 들어와 하루 종일 큰 괴로움에 휩싸였다. 1739년 2월 은밀한 금식과 기도를 위하여 하루를 정하였고,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기를 위하여 종일토록 거의 쉬지않고 부르짖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날 나의 마음의 상태에 대해 상당한 발견을 허락해 주셨다. 1742년 4월-7월 신학 공부 시작~설교자격취득 1742년 7월-11월 강도사 인허~선교사임직 1742년 11월-1743년 3월 선교사 임직~뉴욕의 카우나우믹에서의 인디언 선교사역 개시 11월26일 나의 지극한 추함을 여전히 지각하였고, 할 수 있는 만큼 홀로 있으려고 애쓴다. 11월27일 하나님께 내 영혼을 의탁하며 어느 정도 위로를 얻었다. 뉴욕을 출발하였는데 여전히 말할 수 없는 나의 무가치함을 느끼며 괴로움에 싸여 있었다. 계속해서 내 마음을 하나님께로 올려 긍휼하심과 순결하게 하시는 은혜를 구하였다. 12월12일 주일 아침에, 마치 기도나 설교를 할 힘이 거의 혹은 전혀 없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박하게 필요한 것을 느꼈다. 1743년 4월-1744년 6월 카우나우믹의 인디어 사역~일시적인 퇴거와 고난~학교를 세움~예일 대학 교수회에 제출한 고백~금식기간~델라웨어의 폭스에서의 인디안 사역의 개시~목사 안수 1744년 6월-1745년 6월 델라웨어의 폭스 인근에서의 인디언들을 위한 사역~학교를 세움~서스퀴한나의 인디언들을 방문함~뉴저지의 크로스윅성에로의 여정 1745년 6월-11월 크로스윅성 사역을 시작~델라웨어 폭스에서 사역을 재개~통역자의 회심 1745년 11월-1746년 6월 여러지역에서 일어난 인디어들의 회심 1746년 6월-1747년 10월 건강의 악화로 어쩔 수 없이 인디언들을 떠남~그의 동생 존이 그를 이어서 선교사가 됨~코네티컷에 도착하여 친지들과 함께 지냄~보스턴으로 향함 (거의 죽음에 가까운 상태에 이름)~보스턴에서 쓰임받음~노샘프턴으로 돌아옴~마지막 질병에서 은혜로 승리함~그의 죽음 브레이너드의 신앙이 남달랐던것은 구원을 얻었다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자들과 달리, 구원을 얻게 한 그 마음의 역사는 신앙적 삶의 시작이요, 이제 처음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큰 일을 시작한 것이요, 이제 경주를 처음 출발한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신앙은 격렬한 감정에 의해서 발동된것이아닌, 거룩한 정서와 하늘에 속한 기질이 그 자신 속에서 활기 있게 역사하고 있고 또한 두려움을 몰아내는 신적인 사랑이 내적으로 왕성하게 발휘되고 있다는 느낌에 의한 것이었던 것이다. 또한 브레이너드의 신앙은 이기적이지도 않았고 축복을 바라고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나님을 향한 그의 사랑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본성의 지고한 탁월하심에 근거하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그의 신앙은 체험만 있고 실천은 없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모든 내적인 조명과 감동과 위로들은 곧바로 실천으로 이어지는 성향을 보였다. 느낀점: 지금까지 읽고 들었던 위인들과는 전혀 다른 배경과 특징을 가진 인물이었다. 일기에 쓰여져있는 표현들을 보면 그가 얼마만큼 민감하게 하나님앞으로 나아오려고 했는지 충분히 느낄수 있고, 시편에 기록된 다윗의 시처럼 때로는 기쁨과 감격에 찬 구절, 때로는 절박한 상황속에서의 울부짖음을 볼 수 있다.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과의 교제에 민감하게 반응했으며, 하루 사이에도 몇번이고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들을 세세하게 표현하며, 스스로가 얼마나 나약한 자인지를 항상 고백한다. 그러한 하나님과의 교제속에서 깨닫는것이 있으면 바로 반응하고 실천하였고, 끊임없이 회개하는 고백을 보게 된다. 지금의 나는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과 얼만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는지, 그분의 동행하심과 역사하심을 얼만큼 체험하고 있는지, 그저 부끄러운 모습뿐이다.. 구원을 받은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것이 삶의 목적임을 잊지않으며, 그 목적을 위해 매일 하루의 삶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깨닫고, 영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Think Point!! -하루를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나요? (일기 작성, 묵상, 등) -매일 삶속에서 하나님과 소통하는 시간은 어느정도 되나요? -하나님과 교제속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민감하게 반응하는 방법은 어떤것이 있을까요?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생애와 일기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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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 Sil Park
2020년 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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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는 만남과 헤어짐이 있게 마련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남녀로 지음받았지만(창 1:27), 창조주와의 관계를 거부하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반역은 남녀 관계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영역에서도 그렇듯 이성교제의 영역에서도 자신이 얼마나 모순되고 이기적인 존재인지 또 얼마나 무능력하지 짝이 없는 피조물인지 절감하게 된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즉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에,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중간에 사라진 만남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재회는 가능한가? 만났다 헤어질 수 있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거나,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는 등 미성숙하게 행동하는 것은 분명 악한 것이다. 이성교제를 시작할때는 두 사람 사이에 어느 정도 갈등이 있을 것을 각오해야 하며, 따라서 모든 헤어짐은 회복의 가능성을 충분히 재고해 본 뒤에 최종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기타의 현이 완전히 끊어졌을 때는 어쩔수 없이 새로운 현으로 갈아 끼워야 하지만, 가장자리가 약간 닳은 상태라면 현을 통째로 갈 필요 없이 감아 두었던 남은 부분을 활용할 수 있다. 사소한 문제 때문에 순간적으로 헤어짐을 생각한 경우라면, 평소 갖고 있던 상대에 대한 사랑과 신뢰로 관계를 다시 이어 갈 수 있다. 예: 사소한 의견 차이, 말다툼, 의사소통의 문제 등 차고 채이고 돌아서다 그러나 원하든 원하지 않든 헤어져야 할 때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헤어지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예: 1. 결혼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만나다가 어느 순간 결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2. 성격이나 기질의 차이, 지적 수준과 교육의 차이, 가족이나 부모의 반대, 종교적 신념의 차이 등 3. 사귀는 도중 자신이나 상대의 조건에 변화가 생기거나 이성관, 인생관, 가치관이 달라져서 4. 문란한 이성교제나 부정이 발견되어서 떠날 때는 말없이 대중가요나 영화 제목으로는 멋있을지 모르지만, 이성교제를 마무리할 때 취할 태도는 아니다. 떠날 때는 말이 있어야 한다. 헤어지기에 앞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헤어질 때 가능하면 함께 기도하고 마무리 하는 것은 성숙한 사람의 표시인 동시에 의무다. 그동안 교제를 통해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감사하며 상대의 앞길에 하나님의 축복을 빌어 줄 수 있다면 또 각자가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더 좋은 이성을 만나도록 기도해 줄 수 있다면, 이런 헤어짐은 값싼 만남보다 훨씬 귀하지 않겠는가? 상처,고뇌,아픔 헤어질 때는 잘 모르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 공허함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찾아온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늘 구해왔던 그리스도인일수록 헤어짐의 충격이 크다. 처음에는 두 사람의 만남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믿고 감사하며 시작했는데, 헤어지고 나서 생각해 보니 몇년간의 사귐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했던 시간은 아니었는지 회의와 의심에 시달리는 것이다. 대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자칫하면 균형을 잃고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비록 교제하다 중간에 헤어졌다 하더라도, 만남과 교제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든가, 자신을 향한 최선의 계획이 틀어지고 말았다든가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하나님의 시간표에 영원한 실패와 영원한 좌절이란 없다. 그러므로 어떤일이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보람 있는 인생을 만들어 나갈수 있다. 그래도 태양은 떠오른다 과거의 상처에 얽매이지 말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출발을 할 줄 알아야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이미 어떤 일을 다시 시작하셨다. 이런 깨달음은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하며, 이 사실을 믿을 때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과 기대에 가득 찬 삶을 살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에겐 만남과 헤어짐 모두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어차피 헤어져야 한다면 거기에도 하나님의 오묘한 뜻이 담겨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은 무한히 풍성하며 영원까지 이어진다. 이성과 사귈 때 또는 불가피하게 헤어져야 할 때 하나님의 관점을 가질 수만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이성과 사귈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춘 것이다! 감상: 요즘 들어 이성교제에 관한 고민상담을 듣는 경우가 많다. 특히 헤어지려고 할때 혹은 헤어지고 난 후에 듣는 경험담은 그저 위로하는 한마디 밖에 해줄수 없었던 경우가 많았던것 같다.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 할수 있는지 조금이나마 이 책을 통해 팁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것을 항상 믿고 살아간다면 삶의 매순간에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없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계획하심 속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이성교제 혹은 인간관계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Think Point: 이성교제 혹은 인간관계 안에서 아름다운 헤어짐을 실천해 본적이 있는가? 어떠한 상황에라도 상대방을 축복하며 헤어질 수 있는가?
IVP 소책자시리즈 15: 만날 때와 헤어질 때 (송인규)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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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 Sil Park
2020년 8월 16일
In Books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겸손을 추구하고 교만을 피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겸손과 교만은 여러 미덕과 악덕중의 하나라기보다는 사람의전체적인 태도를 결정하는 심리의 상태다.  1. 복 있는 자 그리고 오만한 자 성경은 겸손한 마음을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 마음이라고 가르친다. (시편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겸손과 교만의 특징: 빈익빈 부익부 (교만은 점점 교만으로 겸손은 점점 겸손으로..) 2. 교만의 본질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말하는 교만 잠 8:13 주님을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 나는 교만과 오만, 악한 행실과 거짓된 입을 미워한다. 잠 9:7-8 거만한 사람을 훈계하면 수치를 당할 수 있고, 사악한 사람을 책망하면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거만한 사람을 책망하지 말아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렵다. 지혜로운 사람은 꾸짖어라. 그가 너를 사랑할 것이다. 신 8:14 혹시라도 교만한 마음이 생겨서, 당신들을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잠 16:18-19 교만에는 멸망이 따르고, 거만에는 파멸이 따른다. 겸손한 사람과 어울려 마음을 낮추는 것이, 거만한 사람과 어울려 전리품을 나누는 것보다 낫다. 성경은 마귀가 범한 근본적 잘못이 바로 교만이라고 말한다.  교만은 죄의 뿌리 (딤전 3:6 또 새로 입교한 사람도 안 됩니다. 그리하면 그가 교만해져서, 마귀가 받을 심판에 떨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교만은 어떤 특정한 행동을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라 모든 태도에 붙을수 있는 하나의 속성이다.  도덕적 피조물이 아닌 마음의 전체적 경향 혹은 그 정신적 상태가 될수있다.  마귀에게서 볼 수있는 그런 정신적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를 자기 이상으로 생각하는것이다.  하나님만이 교만해질수없는 분이다. 모든 높은것의 가장 높은 곳에 계시므로.  시 101:5 숨어서 이웃을 헐뜯는 자는, 침묵하게 만들고, 눈이 높고 마음이 오만한 자는, 그대로 두지 않으렵니다. 눈이 높은 것은 결단코 좋은 일이 아니다. 아니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3. 겸손이란 무엇인가 낮아지는것.  겸손은 삶에 대한 미망에서 깨어나는것이다.  자신에 대한 미망에서 깨어나 자기의 실상을 보는것이다.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과 도우심을 구하는 것.  마음이 완전히 낮아진 상태.  겸손과 자기 연민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자기 연민은 겸손이 아니라 자기의 연약함에 대한 불만과 절망감이다.  사도바울의 깨달음 고후 12:10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힘은 그 사람이 강할때 나타나고, 하나님의 힘은 그 사람이 약할때 나타난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번영하지만, 교만한 사람의 자리는 잠시후에 살펴보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느낀점: 진정으로 낮아지는 것이 무엇이가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준 주제였다. 모든것의 가장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만이 교만해지실수 없다는 것을 잊지말아야 할것이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약할때 강하게 하시는 주님을 붙들며 살아가자. Think point: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겸손과 세상에서 말하는 겸손한 사람을 어떻게 차별화 할수 있겠는가?
IVP 소책자시리즈 44: 겸손 (황영철)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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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 Sil Park
2020년 8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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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의 왕자의 거지 라는 소설: 동갑내기 소년의 이야기. 한 소년은 왕위를 이어받을 왕자이고 다른 소년은 학대받는 불쌍한 거지. 우연히 만나게 된 두 소년은 서로 처지를 바꾸어 보기로 한다.. 이것은 지어낸 이야기지만 결과적으로 볼때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이야기이며, 분명한 진리를 보여준다. 그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변화된 삶에 관한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속한 우리의 자리에 대신 오셔서 우리가 그분의 자리를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복음의 핵심!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자리를 취하시고, 우리의 고통과 슬픔을 담당하시며 우리가 제멋대로 변덕스럽게 살아서 발생한 결과들을 맡아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사실. 사도바울의 예: 갈 2:2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변화된 삶이라는 놀라운 선물은 과거에 대한 용서나 미래에 대한 약속 그 이상이다. 하나님은 오늘 필요한 것들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은 과거의 죄뿐 아니라 현재의 죄에서도 우리를 구원해 주시며, 미래의 상황뿐 아니라 당연한 문제에서도 구해주신다. “우리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자유롭게 삶을 영위하시도록 한다면 그분은 우리와 자리를 바꾸실 것입니다” 자리바꿈은 두 방향으로 일어나는데 그 첫번째 단계가 삶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것, 양도 혹은 헌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두번째 단계를 신뢰 혹은 하나님에 대한 의존이라고 한다. 1. 내어 맡김 - 토기장이의 비유 - 자동차 운전의 비유 - 의사의 비유 롬 12:1-2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2. 신뢰 - 나 자신을 내어 드리고 그분이 나를 받아주셨음을 믿는것. 그 후 그 분이 내어주시는 그분 저신을 신뢰함으로 받아들이는것 갈라디아서‬ ‭2:20‬ ‭ “나는 그리스도 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은이의 번역: 나는 하나님의 아들의 신실함에 의지해서 삽니다. 중요한것은 셀수있는 믿음의 분량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요. 또한 우리의 믿음의 강도가 아니라 변치않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 프로포즈의 비유 사랑을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믿고 받아들여야합니다. 믿고 받아들이고 반응할 때에만 이 사랑을 깨달을수 있습니다. 그런후에야 마침내 변화된 삶이 시작됩니다. 느낀점: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그 사랑을 잊어버리는 순간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미 자리가 바뀌어졌는데도 아직도 자리를 바꾸어 달라고 기도할때도 있는것같다. 변화무쌍한 우리의 감정으로 믿지말고, 하나님의 신실함에 의지해서 살아가도록 노력하자..
IVP 소책자시리즈 29: 거지인가 왕자인가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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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 Sil Park
2020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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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있어서의 거룩함 신명기 7:3-4 “그들과 혼인관계를 맺어서도 안 됩니다. 당신들 딸을 그들의 아들과 결혼시키지 말고, 당신들 아들을 그들의 딸과 결혼시키지도 마십시오. 그렇게 했다가는 그들의 꾐에 빠져서, 당신들의 아들이 주님을 떠나 그들의 신들을 섬기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주님께서 진노하셔서, 곧바로 당신들을 멸하실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14-16 “믿지 않는 사람들과 멍에를 함께 메지 마십시오. 정의와 불의가 어떻게 짝하며, 빛과 어둠이 어떻게 사귈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 와 벨리알 이 어떻게 화합하며,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더불어 함께 차지할 몫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떻게 일치하겠습니까?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내가 그들 가운데서 살며, 그들 가운데로 다닐 것이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비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얻을수 있다. 그러나 데이트에 있어서는 어떤 사람과 하고 또 어떤사람과는 하지말아야 하는지 신중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감에 따라 인간관계에 대해 더욱 더 민감해지기 마련이다. 데이트를 단지 상호적인 사회적 관계일뿐이라고 여기는 비그리스도인들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한다. -대부분 데이트를 통해 결혼으로 발전하기때문에 데이트를 신중하게 생각해야한다. 비그리스도인과의 결혼으로 일어나는 2가지 일? -우상을 숭배하게 되는것 (상대가 자기 자신, 출세, 물질소유, 좋은 직장 등을 숭배하기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자기 삶을 빼앗기는 것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자신을 발견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끼리만 결혼하라고 명령하신것은 그분이 편협하고 동정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차선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려는 것이다. 그분이 결혼을 아름답게 창조하셨다면 그 아름다움을 덜 누리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결혼에 관한 다섯 가지 고찰 1. 하나님은 결혼을 어떻게 보시는가? (에베소서 5:21-33) 2. 결혼이란 무엇인가? (창세기 2:23-24) 3. 하나님은 내가 독신으로 남아있기를 원하시는가? (고린도전서 7:1-9, 25-40) 4. 하나님은 나의 삶 속의 죄를 어떻게 보시는가? (로마서 6:12-19) 5. 하나님과의 계약 (마태복음 16:25, 요한일서 2:15-17) 느낀점: 크리스천 청년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크리스천과 결혼해야한다는 어느정도의 의무감을 가지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번도 그 이유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생각을 해본적이 별로 없었던것같다. 이 책을 통해 그리스도인과의 결혼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공부할수 있었고, 그 이유를 성경에서 찾을수 있어서 비그리스도인과의 교제 혹은 결혼을 고민하는 자들에게 확실히 전달할수 있을것같다.
IVP 소책자시리즈 22: 비그리스도인과의 결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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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 Sil Park
2020년 7월 11일
In Books
*기독교와 페미니즘은 양립할수있는가? - 각각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달려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동등하게 창조됨 - 창세기는 인간에게 노동하고 가족을 이루고 문화를 일으키고 환경을 돌볼것을 명령하는데 이 모든일은 남성과 여성의 공동 책임아래 있다 - 아담과 하와: 동등하고 적합한 조력자 - 창조때에는 성별간의 위계질서가 없었음 - 구조화되지 않은 민주주의 사회 -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가부장제 이전에 황금시대가 있었음 *반역이 가부장제를 초래함 - 창세기 3장: 인간의 죄로 성별간의 위계질서, 경쟁, 착취 등이 생겨남 *문화규범에 도전하신 예수님 - 막달라 마리아 대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으려는 마리아를 칭찬하심 - 독신을 남자와 여자가 선택할수 있는것 - 부활의 첫번째 증인으로 여자를 택하심 - 여자가 첫번째, 마지막으로 예수님곁을 지킴 *세속적인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양립 불가능성 1. 인간본성: 하나님의 형상을 공유함 2. 도덕의 궁극적인 권위 - 누가 최고의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 3. 인간의 위대함의 척도 - 위대함이나 성공을 자기 중심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정의하는것이 페미니즘의 핵심을 이룬다면 그것은 기독교의 믿음과 양립할수없다. 느낀점: 한번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접근이기에 새롭고 흥미롭게 읽을수있었던 책이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세상을 지배하시는 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에 페미니즘과 같은 개념에 흔들릴가치가 없다고 생각되어 진다. 인간의 위대함과 우월함을 논하기 전에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IVP 소책자시리즈 35: 페미니즘과 기독교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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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 Sil Park
2020년 5월 29일
In Books
교제란? 그리스도인의 교제의 참된의미는? 신약에서 보여주는 초대교회의 삶에서 처음 나타남. 행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서 서로 교제하고... 1. 교제의 개념 헬라어에서는 어떤 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함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수직(하나님)과 수평(형제자매) 2. 하나님과의 교제 3.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 -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보여주신것들을 동료에게 나누고 하나님을 더 잘 알수있도록 돕는것 - 자기 영혼에 능력과 힘을 얻는 수단으로 다른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얻은 유익을 받아 들이는것 4. 교제의 중요성 - 교제는 은혜의 수단이다 -> 바울이 편지를 통해 그들에게 자기가 기도한것처럼 자기를 위해서도 기도해달라고 부탁함 - 교제는 삶의 시금석이다 -> 자신의 마음을 열어보이는것.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것과 같음 - 교제는 하나님의 은사다 -> 성령님에게 도움을 구하고 성부와 성자가 교제하셨던 방법을 따라 이루어지는 역사 5. 교제의 방법 - 다양한 방법으로 존재한다 (설교, 기도, 사적인 대화, 부부의 대화 등) - 교제를 방해하는 것들 (자기만족, 형식주의, 적대감, 엘리트 의식) 결론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교제가 절실히 필요하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는 사실상 매우 빈약하다 (친목회 같은 형식) 교제를 반드시 추구해야한다 (은혜의 수단) 느낀점: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교제의 개념을 점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교제를 통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공동체가 될수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성장해야할것이다. 또한 교제의 관계안에서 지혜롭게 행동하며 폭넓은 관계를 가질수 있도록 하자. “우리는 저들과 달라” 라는 틀 안에 갇혀 우월주의에 빠진적은 없는가?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교제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배경과 조건을 보는것이 아닌 하나님을 더알아가는것에 서로 도움이 될수있는가에 포커스를 맞추어야한다. 건강한 교제를 풍성히 누리는 자가 될수 있도록 남을 평가하기전에 스스로부터 점검해보자!
IVP 소책자시리즈 24: 교제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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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 Sil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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